<허임의 업적>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데 있어서 침뜸의 유용성 입증
침구전문업종인 침의(鍼醫)로서의 활발한 활동
최초의 본격적인 침구전문서 ‘침구경험방’ 저술
침뜸을 민중구료의 대중생활의술로서 널리 보급하고자 함
허임의 생애와 삶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기록은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양반사대부가의 문집에 나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기록들에서는 왕실과 조정 그리고 사대부가와 관련된 일화가 주종을 이룰 수밖에 없다. 일반 가난한 백성들을 진료한 활동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허임의 침구진료 행적이 주로 임금을 치료하고, 간간이 양반 사대부만을 치료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이들 기록만을 가지고 허임의 생애를 조명해 내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허임이 백성들을 구료한 활동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자료는 침구경험방에서 광범위하게 찾아볼 수 있다. 평생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한 『침구경험방은 그 자체가 허임의 삶의 행적이기도 하다. 허임은 『침구경험방 서문에서 책 내용과 펴내는 뜻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평소에 듣고 본 것을 가지고 대략 편집하고 차례를 지어 먼저 병을 살피는 요지를 저술하고, 아울러 질병의 전환 구조를 논하고, 보사의 법을 밝히고, 취혈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았다. 또 잡론 약간을 저술하고 효과를 시험해 본 중요한 경혈과 병에 합당한 약을 기록하여 합해서 한 권으로 만들었다. 감히 스스로를 옛사람의 저술에 견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생동안 고심한 것을 차마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임이 집필한 저서 『침구경험방은 당시 국가 최고의 의료기관인 내의원에서 목판인쇄로 간행을 추진했다. 침구경험방의 발문에 이경석은 다음과 같이 그 간행 경위를 밝히고 있다.
지금 나라의 재상인 북저 김류가 내국(내의원)의 도제조를 맡고 있고, 내가 마침 그 아래 있어 이 경험방을 호남관찰사 목성선공에게 부탁하여 간행하게 하였으니, 임금님께서 만백성을 건강하게 살도록 하려는 뜻을 받든 것이다. 훗날 이런 것을 보는 사람들은 이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당시 영의정 명으로 관찰사까지 동원하여 침구경험방을 펴낸 것이다. 조선시대 인쇄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판본으로 책을 하나 펴내는 데는 적지 않은 재원이 들어간다. 가난한 침구의원이 판본으로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국가적인 사업이 아니면 『침구경험방은 간행될 수가 없었다.
한 의원의 임상경험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정리 출판해 낸 것은 그 의술이 그만큼 백성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허임의 침구술이 어느 정도인지는 『침구경험방 발문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 춘추관이면서 내의원 제조를 맡고 있던 당대의 문장가 이경석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태의 허임은 평소에 신의 의술로 일컬어졌고 평생 동안 치료한 사람은 다 꼽을 수가 없다. 그중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낸 경우도 많아 일세에 명성을 떨쳤으며 침의들에게서는 으뜸으로 추앙되었다.
침과 뜸으로 최고의 명성을 떨친 침의(鍼醫) 허임이 평생의 임상을 바탕으로 집필한 『침구경험방이 1644년 마침내 목판본으로 간행되자 조선에서는 집집마다 ‘신의 의술’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침과 뜸을 대중화 하여 백성들의 생활의술로 보급하고자 한 것은 『침구경험방 간행의 취지이기도 했다. 내의원 제조 이경석은 『침구경험방 발문에서 “침과 뜸은 구비하기 쉬우면서도 그 효과가 매우 빠르다”며 “세상이 공유하여 널리 전해야 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증세를 살펴 효과를 거두는 것은 약보다 나은 것이 없는데 우수마발이라도 평소에 모아두지 않으면 마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물며 금석단사의 귀한 약재를 궁벽한 곳에서 어찌 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하물며 한번 복용하여 병이 낫기를 기약할 수 없음에랴. 침놓는 것과 뜸뜨는 것은 그렇지 않다. 구비하기가 쉬우면서도 그 효과는 매우 빠르니 그 처방은 지침 중에도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이 경험방을 얻어서 증세에 따라 치료하면 집집마다 신의 의술을 만날 수 있으니 그 구제하는 바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마땅히 세상이 공유하여 널리 전하여야 할 것이며 없애거나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허임의 정신> 애민정신, 침뜸사랑, 생면건강문화 전승
허임은 어릴 때 부모님의 병을 진료한 의원으로부터 침구의술을 배운 뒤 평생을 고통받고 신음하는 병자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일생동안의 임상경험을 널리 그리고 후대까지 전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침구경험방의 저술에 힘을 쏟았다.
침구경험방 서문에는 “이제는 늙어서 그나마 올바른 법이 전해지지 못할까 근심하고 있다”며 자신이 세상을 하직한 이후의 세상 사람들과 환자들까지 걱정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허임은 “읽는 사람들이 뜻을 더해서 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라며 자신의 평생에 걸친 임상경험을 후대 사람들도 널리 활용하기를 겸손하게 기대했다.
소박하게 표현한 그의 소망은 위대한 결과를 낳았다. 그 뜻을 알아주는 이가 있어 『침구경험방은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데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데 있어서 침뜸의 유용성 입증
침구전문업종인 침의(鍼醫)로서의 활발한 활동
최초의 본격적인 침구전문서 ‘침구경험방’ 저술
침뜸을 민중구료의 대중생활의술로서 널리 보급하고자 함
허임의 생애와 삶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기록은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양반사대부가의 문집에 나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기록들에서는 왕실과 조정 그리고 사대부가와 관련된 일화가 주종을 이룰 수밖에 없다. 일반 가난한 백성들을 진료한 활동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허임의 침구진료 행적이 주로 임금을 치료하고, 간간이 양반 사대부만을 치료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이들 기록만을 가지고 허임의 생애를 조명해 내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허임이 백성들을 구료한 활동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자료는 침구경험방에서 광범위하게 찾아볼 수 있다. 평생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한 『침구경험방은 그 자체가 허임의 삶의 행적이기도 하다. 허임은 『침구경험방 서문에서 책 내용과 펴내는 뜻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평소에 듣고 본 것을 가지고 대략 편집하고 차례를 지어 먼저 병을 살피는 요지를 저술하고, 아울러 질병의 전환 구조를 논하고, 보사의 법을 밝히고, 취혈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았다. 또 잡론 약간을 저술하고 효과를 시험해 본 중요한 경혈과 병에 합당한 약을 기록하여 합해서 한 권으로 만들었다. 감히 스스로를 옛사람의 저술에 견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생동안 고심한 것을 차마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임이 집필한 저서 『침구경험방은 당시 국가 최고의 의료기관인 내의원에서 목판인쇄로 간행을 추진했다. 침구경험방의 발문에 이경석은 다음과 같이 그 간행 경위를 밝히고 있다.
지금 나라의 재상인 북저 김류가 내국(내의원)의 도제조를 맡고 있고, 내가 마침 그 아래 있어 이 경험방을 호남관찰사 목성선공에게 부탁하여 간행하게 하였으니, 임금님께서 만백성을 건강하게 살도록 하려는 뜻을 받든 것이다. 훗날 이런 것을 보는 사람들은 이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당시 영의정 명으로 관찰사까지 동원하여 침구경험방을 펴낸 것이다. 조선시대 인쇄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판본으로 책을 하나 펴내는 데는 적지 않은 재원이 들어간다. 가난한 침구의원이 판본으로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국가적인 사업이 아니면 『침구경험방은 간행될 수가 없었다.
한 의원의 임상경험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정리 출판해 낸 것은 그 의술이 그만큼 백성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허임의 침구술이 어느 정도인지는 『침구경험방 발문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 춘추관이면서 내의원 제조를 맡고 있던 당대의 문장가 이경석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태의 허임은 평소에 신의 의술로 일컬어졌고 평생 동안 치료한 사람은 다 꼽을 수가 없다. 그중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낸 경우도 많아 일세에 명성을 떨쳤으며 침의들에게서는 으뜸으로 추앙되었다.
침과 뜸으로 최고의 명성을 떨친 침의(鍼醫) 허임이 평생의 임상을 바탕으로 집필한 『침구경험방이 1644년 마침내 목판본으로 간행되자 조선에서는 집집마다 ‘신의 의술’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침과 뜸을 대중화 하여 백성들의 생활의술로 보급하고자 한 것은 『침구경험방 간행의 취지이기도 했다. 내의원 제조 이경석은 『침구경험방 발문에서 “침과 뜸은 구비하기 쉬우면서도 그 효과가 매우 빠르다”며 “세상이 공유하여 널리 전해야 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증세를 살펴 효과를 거두는 것은 약보다 나은 것이 없는데 우수마발이라도 평소에 모아두지 않으면 마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물며 금석단사의 귀한 약재를 궁벽한 곳에서 어찌 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하물며 한번 복용하여 병이 낫기를 기약할 수 없음에랴. 침놓는 것과 뜸뜨는 것은 그렇지 않다. 구비하기가 쉬우면서도 그 효과는 매우 빠르니 그 처방은 지침 중에도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이 경험방을 얻어서 증세에 따라 치료하면 집집마다 신의 의술을 만날 수 있으니 그 구제하는 바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마땅히 세상이 공유하여 널리 전하여야 할 것이며 없애거나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허임의 정신> 애민정신, 침뜸사랑, 생면건강문화 전승
허임은 어릴 때 부모님의 병을 진료한 의원으로부터 침구의술을 배운 뒤 평생을 고통받고 신음하는 병자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일생동안의 임상경험을 널리 그리고 후대까지 전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침구경험방의 저술에 힘을 쏟았다.
침구경험방 서문에는 “이제는 늙어서 그나마 올바른 법이 전해지지 못할까 근심하고 있다”며 자신이 세상을 하직한 이후의 세상 사람들과 환자들까지 걱정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허임은 “읽는 사람들이 뜻을 더해서 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라며 자신의 평생에 걸친 임상경험을 후대 사람들도 널리 활용하기를 겸손하게 기대했다.
소박하게 표현한 그의 소망은 위대한 결과를 낳았다. 그 뜻을 알아주는 이가 있어 『침구경험방은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데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