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의 의학자인 허준과 침술과 뜸법에 제일인자로 성장하는 허임이 동시에 등장하여 선조의 편두통을 치료하는 장면이 선조37년(1604년)의『선조실록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1경 말 임금이 앓아 오던 편두통(偏頭痛)이 갑작스럽게 발작하였다. 직숙(直宿)하는 의관(醫官)에게 전교하여 침을 맞으려 하였다. 입직(入直)하고 있던 승지가 아뢰기를, “의관들만 단독으로 입시(入侍)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니 입직한 승지 및 사관(史官)이 함께 입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침을 맞으려는 것이 아니라 증세를 물으려는 것이니, 승지 등은 입시하지 말라”하였다.
또 아뢰기를, “허임이 이미 합문(閤門)에 와 있습니다”하니, 들여보내라고 전교하였다. 2경(更) 3점(點)에 편전(便殿)으로 들어가 입시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침을 놓는 것이 어떻겠는가”하니, 허준이 아뢰기를, “증세가 긴급하니 상례에 구애받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 차례 침을 맞으시는 것이 미안하기는 합니다마는, 침의(針醫)들은 항상 말하기를 ‘반드시 침을 놓아 열기(熱氣)를 해소시킨 다음에야 통증이 감소된다’고 합니다. 소신(小臣)은 침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마는 그들의 말이 이러하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 허임도 평소에 말하기를 ‘경맥(經脈)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阿是穴)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하였다.
임금이 병풍을 치라고 명하였는데, 왕세자 및 의관은 방안에 입시하고 제조(提調) 이하는 모두 방 밖에 있었다. 남영이 혈(穴)을 정하고 허임이 침을 들었다. 상이 침을 맞았다.
허준이 "소신은 침놓는 법을 모릅니다"라고 한 것은 단지 겸양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 허준은 침놓는 것에 대해서 허임과 침의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임금에게 의견을 전하고 있습니다. 허준은 침의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었고, 침의들과의 역할분담에 대해 익숙한 모습입니다. 대략 60대 중반에 이른 허준과 30대의 허임이지만 허준은 침의 허임의 이론을 존중하고 신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선조는 며칠 동안 침을 연이어 맞았습니다. 그 후에도 선조는 종종 침을 맞았습니다. 윤 9월이 지나고 10월23일 선조는 편두통을 침으로 치료할 당시의 관계자들에게 대대적인 포상의 지시를 내립니다. 잘 낫지도 않고 날짜만 끌던 선조의 편두통이 침의 허임과 남영의 침술로 병세가 잡힌 것입니다.
어의 허준에게는 좋은 말 1필을 하사하고, 침의 허임과 남영에게는 한 자급을 더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6품의 허임과 7품의 남영을 동시에 3품의 당상관(堂上官)으로 파격 승진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