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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보다 더 뜨거웠던 연해주 고향마을 침뜸봉사

2016-12-30 조회 1649






[건강나눔터 해외봉사 참가기]
지난 여름 보다 더 뜨거웠던 연해주 고향마을 침뜸봉사

안태경  

                
‘러시아 침뜸 봉사 가실 분은 신청하세요!’
수요일 침뜸봉사가 끝난 시간에 사무국장님 안내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암수술 9년째인데, 갔다가 아프면 동료들도 힘들게 할텐데…’ 이런 걱정으로 선뜻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나에게 할 수 있다고 힘을 준 사람은 아내와 동료 봉사자 정영기 선생님. 봉사 후에 침뜸하면 걱정 없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봉사를 신청했습니다.
드디어 7월29일 8시50분경 일행 6명은 러시아 여객기로 인천을 떠났습니다. 2시간40분 걸려 하바롭스크에 도착. 가이드의 안내로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사 먹었는데, 밥과 반찬을 저울로 달아서 파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바롭스크는 작은 도시임에도 넓은 광장에 높은 레닌동상이 있었고, 길 건너에는 색동옷 입은 예쁜 정교회성당이 함께 있었습니다. 전선을 말꼬리처럼 휘젓는 전기버스가 시내를 놀이공원인 듯 돌고, 돌고 또 돌고... 그렇게 조그만 이 도시는 힘차게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7월30일 아침. 시내 구경을 하고 아무르강에 왔습니다. 백두산 천지서 흘러내려 중국령(領)을 흐르면 송화강. 러시아령(領)은 아무르강이라… 멀리도 흘러와 이 넓은 평야의 젖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배를 타고 넓은 강을 휙 한 바퀴 돌아봤습니다. 배안에서는 맥주로 건배도하구요. 강바람이 참으로 시원했습니다.

하바롭스크 기차역에서
오후7시50분 경.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습니다. 요금이 비싼 4인실 침대칸인데 이층침대가 양벽에 붙어있고 중앙엔 탁자도 있습니다. 그 안쪽엔 커피포트도 하나있고 외창엔 연갈색커튼이 앙증맞고 좁은 공간을 잘 꾸며 놨습니다.
7월31일 8시40분 브라디보스톡에 도착하여 마중 온 사무국장님과 시내를 구경하고 우스리스크 고향마을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구소련이 고려인들을 강제로 태워간 기차역과. 혜이그 밀사 이상설 선생님 숭모비와 이 대륙에 발해를 세운 대걸중상과 대조영 부자의 첫 궁궐터도 가 보았습니다. 정말 가슴 뭉클한 유적지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봉사를 한 고향마을 분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던 분들의 후손들로 구소련이 붕괴되자 부모님과 마음 맞는 분들끼리 고향에 돌아와 농사와 가축을 기르며 삶의 터전을 힘들게 일궈가는 분들이었습니다. 
‘연해주동북아평화기금’재단이 우리를 초청하여 숙식과 치료실을 제공했고. 침뜸재료는 미리 모듬살이연대에서 보낸 것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이날 오후, 봉사실 치료대가 너무 낮아 팀장님이 솜씨 있게 높인 뒤 봉사실로 옮기고 가림막을 치고 봉사공간을 정비했습니다. 부족한 물품은 평화기금 대표님이 다음 날 아침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샤워를 하고 식당엘 갔는데 노래하며 저녁을 준비하시는 아주머니들 표정이 밝아 보였습니다.
첫날 저녁 식사 후 그릇을 씻어 제자리로 가져다 두는데 집에서 돌아온 아주머니와 마주쳤습니다. 근엄한 얼굴로 나를 보며 “선생님은 우리들을 치료하러 오셨는데 설거지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일입니다. 아셨습니까!”하며 정색을 하시기에 “아주머니 우리 집 사람이 어디를 가든 당신이 먼저 솔선수범하라’고 교육을 시켜 이리로 보냈습니다.” 했더니 아주머니들이 주저앉아 배꼽을 잡고 웃으셨습니다. 그 후부터 한아주머니는 나만 보면 쿡쿡 웃으십니다. 아주머니들은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우리가 먹는걸 흐뭇하게 바라보십니다.
저녁을 먹고 3명이서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왔습니다. 내일부터 진료를 하게 되며 러시아인과 고려인이 같이 진료를 받는답니다. 
8월1일.9시부터 봉사를 시작했고 찾아오는 고려인 주민이 말은 안통해도 고향분 같이 느껴졌습니다. 오전에 3명 오후에 2명 정도 치료를 했습니다. 20여명을 상담하여 기록하느라 김태웅 선생이 힘들었으며, 임종배 팀장님은 상담 도우랴 전체 돌보랴 진료대 하나 맡아 치료하랴 힘든 하루였습니다. 봉사자들도 첫날이라 긴장했으며 러시아 분이 오면 조심스러웠습니다. 통역을 자주 부르게 되어. 통역 두 분도 힘들었습니다.
봉사를 마치고는 첫 종례 시간이라 토론이 길어진데다 너무 더워 사워부터하고  봉사자 서로에게 침뜸을 해 주었습니다.
둘째날 9시. 전날 오셨던 분은 어제 그침대로 배정 밤동안 변화를  듣고 참고하게 했고 두  번째  만나
간이 침뜸진료실의 창밖으로는 대륙의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낮설지 않게 배려했습니다.


원주민 남자 한 분은 몸집이 내 몸의 두 배쯤 컸습니다. 대형트럭 기사인 그는 짐을 많이 드는 일을 하여 양쪽 어깨통증이 심했는데 첫날 치료받은 뒤 간밤엔 통증이 많이 줄었답니다. 처음 접하는 침뜸이라 빠른 효과를 본 듯 했습니다.

 

우스리스크 일간지의 여성 기자도 오른쪽 어깨와 목의 통증을 치료받고 덜 아파졌다며 봉사가 끝날 때가지 계속 왔습니다.
날이 무더워도 가림막은 해야 해서 시술자와 환자가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둘째날 봉사팀장이 주선하여 모아온 운영기금으로 선풍기 세 대를 더 샀습니다.
시간은 살 같이 가고 며칠간 계속된 봉사를 마쳤습니다. 접수를 본 김태웅 선생은 결과를 정리하여 발표했습니다. 치료받은 총인원 105명, 고려인과 러시아인은 7:3의 비율이었고, 여자와 남자 비율도 7:3으로 여성이 많았습니다. 집계발표에 박수를 치며 수고한 서로를 격려하였습니다.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거의가 섭섭한 눈빛이며, 두 손을 꼬옥 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분도 있었습니다.
모듬살이연대는 목화솜처럼 포근한 손길을 고향마을에 주고 온 것입니다.

[사진: 간이 침뜸진료실]

[2016년11월 <사랑나눔소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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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고향마을 간이 침뜸실 앞마당에서 생긴 일
눈 안 좋은 어린 친구에겐 시력 돕기 

 

연해주 고향마을 침뜸봉사 중 봉사실 앞 마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오후 시간이면 초등학교 저 학년생 서너 명이 마당에 찾아와 놀다 갔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도 나누며 금방 친해져 우린 과일과 과자를 나눠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뛰어 놀지도 못하고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루스땀. 그 애는 시력이 많이 나쁜데 집이 가난해서 안과엘 가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임종배 팀장이 확인해 전해주며 우리가 도와주자고 했습니다. 모두 찬성을 하고 가져온 기금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 도움으로 루스땀은 치료를 받고 안경을 썼습니다. 눈이 잘 보이니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 뛰놀며 건강하게 자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절로 즐겁습니다.
루스땀 어머니인 따지야나씨가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내용의 감사 편지와 안경 쓴 아들의 사진을 모듬살이연대로 보내왔습니다.

[사진: 안경 쓴 루스땅과 어머니의 감사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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