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임의 아버지 악사 허억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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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임의 아버지 허억봉은 최고의 음악가였습니다. 관노 출신으로 특히 대금을 잘 불었습니다.
문신 정사룡(鄭士龍)의 문집린 『호음잡고』의‘허억봉의 대금연주’라는 시에는 “재주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르렀지만 자네 오직 독보적이라”며 허억봉을 극찬했습니다. 허균의 스승 손곡 이달도 장악원에서 대금을 부는 허억봉을 보고 ‘악사 허억봉에게 주는 시’를 칠언절구로 읊었습니다.
허억봉은 당시 예조판서 등을 지낸 양반 김귀영 가(家)의 사비(私婢)와 결혼하여 허임을 낳았습니다.
오희문이라는 양반사대부가 쓴 일기 쇄미록에 "억봉은 전악(典樂)으로 기공(妓工)을 데리고 남고성의 집에 와서 학춤을 추었는데 그 때 손에 박달나무 판을 들고서 여러 기공의 앞에 서서 공정(公庭)에서 훨훨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억봉은 요즈음 말로 만능 예능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양반집의 종과 결혼하여 허임이라는 침구의 대가를 낳은 것입니다.
허억봉은 1561년 안상이 지은 목판본 악보인 금합자보(琴合字譜) 중에 대금악보인 적보(笛譜)를 맡아 악보를 썼습니다. 이 책은 1572년(선조 5년)에 간행됐습니다. 안상은 금합자보의 편찬 경위를 밝히는 서문에서 악공 허억봉은 적(笛, 대금)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고 소개했습니다.
허억봉은 10년 동안 장악원의 전악을 했고, 그 뒤에도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홍려시의 악사로 활동했습다. 그는 거문고도 잘 했고, 퉁소도 불었으며 박(拍)을 들고 학춤도 추었습니다.
허억봉은 국가대표 악사(樂師)였고, 그 아들은 조선 제일의 침의였던 것입니다. 부자(父子)가 신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국가대표 역할을 한 것입니다.